건강했던 신입사원 백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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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이 쓰러졌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의 직장에서였다.
구급대 카트에 실린 청년은 응급실에 도착했다. 사회 초년생이 흔히 입는 정장 차림이었다. 얼굴이 창백했고 옷매무새가 풀어져 있었다. 숨을 몰아쉬는 모양이 힘겨워서 의식 수준이 떨어져 보였다. 깊게 잠이 든 것과 뇌 기능이 저하된 상태는 호흡하는 양상이 분명히 달랐다. 아마 휴게실에 누워있다가 갑작스럽게 뇌에 문제가 왔을 것이다.
우리는 그를 즉시 CT실로 보냈고 뇌간을 누르고 있는 커다란 뇌출혈을 발견했다. 기도를 확보하고 응급 수술을 준비하는데 피검사 결과가 나왔다.
빈혈이 있었고 혈액 내 백혈구와 혈소판이 거의 없었다.
급성 백혈병이었다. 하지만 환자는 모르고 있었다. 피로감, 코피 등의 증상, 혈액 수치 때문에 뇌혈관이 터져 커다란 뇌출혈이 발생했을 것이다.
“OO 환자의 보호자 되십니까? 여기는 서울 병원의 응급실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아드님이 평소 건강하셨습니까?”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아드님이 쓰러져서 뇌출혈로 의식이 없습니다. 백혈병으로 추정되는 혈액 질환이 발견되어 수술도 불가능합니다. 좋지 않은 상황이니 오셔야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통화를 끊으니 자정이 훌쩍 넘겨 있었다. 서울행 마지막 차는 이미 떠났으므로 운전을 해야 할 것이다. 네다섯 시간은 족히 걸리겠지만 부모는 오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중증 환자는 여섯 시간 내에 중환자실로 옮겨야 했고, 중환자실로 옮길 경우 부모는 면회가 불가능했다. 우리는 결론을 냈다. “중환자실로 보내지 말고 여기서 기다립시다. 멀리서 온 부모에게 얼굴을 보여줘야겠지요.” 우리는 정확히 여섯 시간째에 환자를 옮기기로 하고 그의 부모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심야의 환자들이 지나갔다. 손발의 열상을 몇 개 꿰맸더니 밤이 깊어졌다. 새벽 다섯 시가 되자 응급실 안팎은 적막했다. 우리는 의식을 잃어버린 청년을 돌보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을 그의 부모를 떠올렸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뇌출혈, 의식 불명, 혈액 질환 같은 몇 개의 단어들이다. 허나 그들이 아는 것은 건강한 아들이다. 직접 두 눈으로 봐야지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병원에서 근거 없는 말을 하지 않겠지만, 확인해야 알 수 있다. 아들의 안위를 확인해야만 한다.
새벽의 정적이 흘렀다. 시간이 오래 걸리자 우리는 차 안의 시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천안쯤 지나는 중이겠지요?” “아니면 수원쯤?” 임박하는 시간을 기다리며 우리는 왜인지 그 차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로는 어둡고 그들의 대화는 어려울 것이다. 각자가 최악을 상상하지만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대신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며 빠른 속도로 운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전화를 걸어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새벽의 정적 속에서 줄곧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부모는 네 시간 사십 분 만에 도착했다. 이미 수속을 마치고 환자를 옮기려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자마자 곁에 쓰러졌다. 아버지는 잠시 아들을 확인하고 설명을 들으러 왔다. “이 하얀 부분이 모두 뇌출혈입니다. 혈액 수치를 감안했을 때, 이 출혈에 손을 대면 환자는 즉시 사망할 것입니다. 아마도 처음부터 백혈병 때문에 뇌출혈이 생겼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항변하듯 답했다.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도 이상이 없다고 했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겠지만 제가 하는 말도 사실입니다. 방법이 없을 정도로 나쁜 상태입니다.” 사실상 반론이 불가능한 선언이었다. 아버지는 잠시 하늘을 보다가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있는 아들 곁으로 향했다. 마치 싸워 지켜내려는 듯이. 그 모습이 우리가 본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곧 남은 환자를 정리하고 퇴근했다.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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